劉徹 (유철, BC 156~BC 87)

한무제 유철(漢武帝 劉徹, BC 156~BC 87)

異名: 刘彻(Liú Chè), 아명 체(彘), 자 통(通), 묘호 세종(世宗), 시호 효무황제(孝武皇帝)

국적: 중국 전한(前漢)

활동분야: 정치


중국 한(漢)의 제7대 황제로서 제후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였고,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쳐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한(漢)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劉知幾 (유지기, 661~721)

劉知幾(유지기, 661~721)

7세기 말 당나라 때의 역사학자. 고종·측천무후 등의 실록과《당서》등 수찬에 참여했다. 벼슬이 좌산기상시에 이르렀고, 거소현자에 봉해졌다. 저서《사통》은 중국 역사학사상 고전이다.


자 자현(子玄). 12세 때에 《좌전(左傳)》을 독파(讀破)한 수재로서, 17세 때까지 한 ·당(漢唐)의 정사(正史) ·실록을 거의 섭렵할 정도로 역사서에 능통하였다. 20세 때에 진사에 급제하고 수사국(修史局)에 들어가, 고종 ·측천무후 ·중종 ·예종 등의 실록과 《당서(唐書)》 《성족계록(姓族系錄)》 등 수찬(修撰)에 참여하였다. 그뒤 벼슬이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에 이르고 거소현자(居巢縣子)에 봉해졌다. 맏아들 황(貺)의 무죄를 호소하다가, 현종의 노여움을 사 유형당한 뒤 죽었다. 저서인 《사통(史通)》은 중국 역사학사상 고전으로 귀중한 사료이다.


史通(사통)

陸游 (육유, 1125~1209)

陸游(육유)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1125~1209).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 남송 제일의 시인으로, 금(金)나라가 남침했을 때 이민족에 대해 끝까지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한 철저한 항전주의자였다. 65세 때에 향리에 은퇴하여 농촌에 묻혀 지내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약 1만 수(首)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시 사상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히며, 당시풍(唐詩風)의 강렬한 서정을 부흥시킨 점이 최대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나라의 상황을 개탄한 시나 전원의 한적한 생활을 주제로 한 시가 많다. 글씨도 뛰어났다.

작품으로는 시집 검남시고(劍南詩稿)와 기행문 입촉기(入蜀記), 사서(史書) 남당서(南唐書) 등이 있다.


관련 한시

九月四日鷄未鳴起作(구월사일계미명기작) |


관련 한자어

大材小用(대재소용) | 靑天霹靂(청천벽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