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子儀(곽자의, 697~781)
異名: 郭子仪(Guō Zǐyí)
국적: 중국 당
활동분야: 군사
중국 당(唐)나라의 무장(武將).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중원(中原)의 반란군을 토벌했고 위구르의 원군을 얻어 창안과 뤄양을 수복했다. 토번(티베트)이 창안을 치려 하자 위구르를 회유(懷柔)하고 토번을 무찔렀다.
화저우[華州:陝西省] 정셴[鄭縣] 출생. 천보(天寶) 연간(742~756)에는 북경(北境) 방위를 맡아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 휘하에 있었는데,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삭방의 군사를 거느리고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 이광필(李光弼)과 함께 중원(中原)의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756년에 숙종(肅宗)이 서북의 영무(靈武)에서 즉위한 후에는 황태자 광평왕(廣平王:뒤의 代宗) 밑에서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관군의 총지휘를 맡았으며, 위구르(Uigur:回紇)의 원군을 얻어 창안[長安]과 뤄양[洛陽]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환관(宦官) 어조은(魚朝恩) 등의 배척으로 한때 실각하였다. 그 후 대종의 광덕(廣德) ·영태(永泰) 연간에 토번(吐蕃:티베트)이 복고회은(僕固懷恩) 등과 연합하여 창안을 치려고 하자 다시 기용되어, 위구르를 회유(懷柔)하고 토번을 무찔러 당나라를 구하였다. 그의 무공은 비할 데가 없다고 칭송되어, 상부(尙父)의 칭호를 받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졌으며, 당나라 최대의 공신으로서 영광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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