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操 (Cáo Cāo, 155~220)


Cáo Cāo (曹操; 155 – 220 March 15)

Cao Cao (IPA: [tsʰɑ̌ʊ tsʰɑ́ʊ]; 155 – 15 March 220), style name Mengde, was a warlord and the penultimate Chancellor of the Eastern Han Dynasty who rose to great power in the final years of the dynasty. As one of the central figures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he laid the foundations for what was to become the state of Cao Wei and was posthumously honoured as "Emperor Wu of Wei". Although he is often portrayed as a cruel and merciless tyrant, Cao Cao has also been praised as a brilliant ruler and military genius who treated his subordinates like his family. He was also skilled in poetry and martial arts and wrote many war journals.


Quotes·Quotations by Cáo Cāo

Betrayal

¶ 寧我負人,毋人負我!
Translation: "I'd rather betray others, than have others betray me."
Statement in 190, after falsely killing Lü Boshe. Source: Sun Sheng Zaji, page 5 of Sanguo Zhi.


http://en.wikipedia.org/wiki/Cao_Cao

曹操 (조조, Cáo Cāo, 155~220)

曹操(조조, 155~220)

異名: Cáo Cāo, 자 맹덕, 묘호 태조, 시호 무황제
국적: 중국 삼국시대 위
활동분야: 군사, 정치
출생지: 중국 안후이성


중국 삼국시대 위왕조(魏王朝)를 세운 장군. 황건란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 헌제를 옹립하였다. 화북 평정 후, 손권·유비의 연합군과 싸워 대패,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문학을 사랑하여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다.

曹植 (조식, Cáo Zhí, 192~232)

조식 (曹植, 192~232)

異名: 曹植(Cáo Zhí), 자 자건(子建), 시호 사(思), 진사왕(陳思王)
국적: 중국 삼국시대 위(魏)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주요저서: 《조자건집(曹子建集)》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자기를 콩에, 형을 콩대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칠보지시(七步之詩)》를 지었다. 당시의 문학적 중심을 이루었고, 오언시를 서정시로서 완성시켜 문학사상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주요 저서에는 《조자건집(曹子建集)》등이 있다.

趙飛燕 (조비연)

조비연(趙飛燕)

한나라 성양후였던 조임(趙臨)의 딸. 효성황후(孝成皇后)까지 오름. 중국 전통의 미인상.


한(漢)나라 성황제(漢成帝)의 부인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아 효성황후(孝成皇后)까지 올랐다. 본명은 조의주(趙宜主) 였으나 '날으는 제비'라는 뜻의 별명 조비연(趙飛燕)으로 불리었다. 갸날픈 몸매와 뛰어난 가무(歌舞)는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일화에 의하면 황제가 호수에서 베푼 선상연(船上宴)에서 춤을 추던 도중 강풍이 불어 갸냘픈 몸이 바람에 날리자, 황제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 물에 빠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비연은 그 상황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고 임금의 손바닥위에서 춤을 추었다하여 '물 찬 제비 또는 날으는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때 임금이 조비연이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발목을 급히 붙잡다가 치마폭의 한쪽이 길게 찢어지게 되었는데 이렇게 찢어진 치마는 오늘날 중국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유선군(留仙裙)의 유래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이후 비연은 황제가 살아있는 10년간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가, 황제가 죽자 탄핵되어 평민으로 전락하였고 이후 걸식으로 연명하다가 자살하였다. 오늘날 조비연은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로 상징되고 양귀비는 풍만한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가족관계

한 성제 [成帝, BC 52~BC 7]
조합덕/소의 조씨[趙合德 昭儀 趙氏] : 조비연의 여동생
시어머니 효원황후 왕정군


조비연(趙飛燕) 관련 한시

淸平調詞二首(청평조사2수)
李白(이백)


조비연(趙飛燕) 관련 한자성어

추선(秋扇) 추풍지선(秋風之扇)

趙飛燕 (Zhao Feiyan)

Zhao Feiyan (趙飛燕, c. 32–1 BC)

Zhao Feiyan (Chinese: 趙飛燕, c. 32–1 BC),[1] formally Empress Xiaocheng (孝成皇后), was an empress during the Han Dynasty. Her husband was Emperor Cheng.[2] She was known in the Chinese popular mindset more for her beauty than for the palace intrigue that she and her sister, the also beautiful Consort Zhao Hede engaged in, but unlike most of the famous beauties in Chinese history (such as the Four Beauties), she was often vilified by historians. She was often compared and contrasted with Yang Guifei, the beautiful concubine of Emperor Xuanzong of Tang, because she was known for her slender build while Yang was known for her full build. This led to the Chinese idiom yanshou huanfei (燕瘦環肥), describing the range of the types of beauties.


Notes

[1]^ a b c d e Peterson, Barbara Bennett & He Hong Fei & Han Tie & Wang Jiyu & Zhang Guangyu. (1999) Notable Women of China "M.E. Sharpe". pp. 87-90. ISBN 0-7656-0504-X.


http://en.wikipedia.org/wiki/Zhao_Feiyan